Sunday, May 4, 2008

역사 스페셜 44회 - 미스터리 추적 신라의 소정방 피살사건

당나라군사 소정방은 당태종때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장군이 되고,
서돌궐을 정복하고, 660년 돌궐의 반란을 진압하고, 백제정복하여 좌효위대장군이라는 관직과 형국공에 봉해진다. 이 직위는 왕 다음으로 높은 작위였다.

그러나 그보다 공훈이 낮았던 유인궤, 설인귀등이 죽었을때는
식읍을 얼마 받았고 황제의 무덤에 함께 묻혔다는 등 그들이 받은 예후가 자세히 기록되었는데
소정방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었다"라고만 나온다.

소정방은 13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로 온다.

신라와 함께 백제를 정복한 소정방은 작전지휘권문제와 전후처리 문제로 김유신과 갈등을 겪는다.

신라는 평양 이남을, 당은 평양이북을 차지하려는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당의 목적은 한반도 전체를 차지라는것이었다.

당군은 백제땅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백제를 다스리고 고구려마져 정복하자 신라를 노리게된다.

이에 신라가 웅진도덕부를 공격하니, 고구려에 있던 소정방은 신라를 공격하려고 문경 당교지역에 주둔했다가 김유신의 유인작전에 말려 궤멸당한것이 아닌가 추축된다.

어이없는 패배를 은폐하기위해 소정방은 역사속에서 사라졌을것이다.

이로인해 시작된 7년간에 나당전쟁에서
신라는 매초성에서 3만의 군사로 20만의 당, 말갈, 거란 기병을 대파하고
기벌포에서 수십차례의 해전끝에 당해군을 물리친다.

신라의 기민한 전쟁수행 능력은 참으로 놀라왔다.

"노"라는 활비슷한 무기의 성능을 개선하고 당의 기병을 물리치기위해 장창단을 만드는등 군사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원래 적대관계였지만, 당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남으로 서로 단결함으로서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었다.

역사 스페셜 41회 - 환단고기 열풍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4권의 책을 묶은것이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
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5천년에서 1만년으로 끌어올리고
통치영역을 중국, 일본, 심지어는 중동까지 확대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도 우리민족의 문명으로 포함시킨다.

이 4권의 책들의 저자는 신라와 고려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이책을 썼다는 사료는 없다.
1911년 계연수란 사람에 의해서 엮어진것으로 되어있다.
이책에 발문에 이기에 의해 감수되고, 홍범도, 오동진의 자금지원을 받았다고 되어있다.
이기, 홍범도, 오동진의 공통점은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와 연관되어있다는 점이다.
환단고기의 편찬 목적이 일제시대 떨어진 민족정기를 높일 의도였다고 보여진다.

계연수가 엮은 원본은 존재하지않고
1979년 단단학회 회장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나 별로 주목을 받지못하다가

1982년 가지마 노보루라는 변호사에 의해 일본번역본이 역수입되면서 주목을 받는다.
가지마 노보루는 일본천황가를 본류로 우리나라를 방계로 해석하며
그들 천황가의 전통성을 위해 이용한것이다.

이후 일본번역판과는 다른 우리 나름대로의 번역으로 많은 번역본이 출판된다.

이 책은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기존의 역사적 사료와 일치하지않고,
"산업", "문화", "남녀평등"등 편찬 당시인 신라, 고려시데에 쓰이지않는 단어와
고조선의 인구를 6억으로 잡은점등 사료로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것이 학계의 입장이다.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믿고싶은 역사가 아닐까 하는것이 이 방송의 결론인듯...

역사 스페셜 72회 - 조선왕조 기피인물 1호, 허균

당대 최고의 가문인 동인의 영수 허엽의 막내아들이자 허난설헌이 누나이다.

서얼출신인 스승 이달을 통해 조선사회의 모순을 안타까와했고,
많은 기생, 서얼과 스님들과 어울렸으며,
불경을 읽고 천주교서적도 들여오는 그 당시 성리학사회에서는 도져히 받아들일수 없는 기행을 펼쳐,
당대 최고의 문장가임에도 6번이나 파직되며 복직을 반복한다.

허균은 여자 관계에 있어서도 유교의 굴레를 벗어 던진 사람이었다.
여행할 때마다 잠자리를 같이 한 기생들의 이름을 그의 기행문에 버젓이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 당시 그런 행동 자체는 소위 풍류를 좋아하는 관리들의 흔한 행태였던것같다.
그러나 허균은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놓았다.

부안 부임시 당대 여류시인으로 유명한 기생 매창과 교분을 나누었는데
오랜 세월을 정신적 친구로 지낸다.

다음은 그 날을 짐작케할수있는 허균의 편지...

"그때에 만약 생각을 한번 잘못 먹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이처럼 교분이 돈독할 수가 있었겠소."

어머니 상을 치른지 얼만 안되어 기생을 가까이하고 상중에 아이를 낳았다고 파직이 되는데
그당시에는 상중인 3년동안 애도 낳아서는 안돼나보다.

다음이 허균의 변인다...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요,
인륜과 기강을 분별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나는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내려주신 본성을 어길 수 없다.


시대를 너무나 앞서간 자유인이다...


허균하고 연관있는 시는 아니지만
매창의 시 한수...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역사 스페셜 84회 - 고려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

고려말 원나라의 힘이 약화되자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해 개혁정책을 편다.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도 있었지만, 홍건족과 왜구의 침입으로 실패한다.

왜구...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무슨 오합지졸 도적들때문에 국가위기상황까지 발생했을까.

이에 해답을 준것이 KBS 역사스페셜 "고려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이다.

원나라는 고려의 저항을 약화시키기위해 지방군과 전통적으로 강했던 해군도 무력화시켰다.

왜구들은 조세를 걷어 모아두던 조창을 목표로 침투했는데,
조창을 내부로 옮기자 내륙까지 침투하고 나중에는 개경까지 넘보게된다.

우왕때 최영의 홍산전투와 이성계의 황산전투이후에야 왜구들의 침입은 한풀 꺽이게된다.

당신 일본의 상황은 천황가가 분열되어 2개의 조정이 세워지고 그 안에서도 분열이 계속되어 전쟁의 연속인 남북조시대였다.

계속되는 전투로 인적물적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이들은 무방비상태인 고려의 내부까지 깊숙히 침입하여 물자와 장정들을 약탈해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순한 도적떼가 아니라 잘 훈련된 정예부대였던것이다.
원나라의 지배로 연약했던 고려가 오랜 전쟁으로 잘 단련된 왜구에게 쉬운 먹이감이었던것이다.

왜구들에 의한 피해의 한 예로 고려의 불화(불교 그림)를 보여준다.

현존하는게 100여점인데 그당시 90%이상 약탈당하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게 10여점도 안된다고 한다. 일본에 우리 문화재를 소재지에 찾아가 보니 어떤 문화재는 만든 일시와 시주한 사람들 이름까지 다 적혀있는 문서까지 딸려있었다. 그걸 가지고 있는 일본인왈 "어떤 경로로 이것이 여기에 왔는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