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중엽 백제의 전성기 근초고왕때 백제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점령하고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전사한다.
그후 5세기초 고국원왕의 증손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 아차산을 기지로 남진정책을 추진한다.
이당신 삼국의 역학관계는 다음과 같다.
광개토왕때 고구려가 강성해지자 약소군 신라는 고구려편에 붙는다.
이에 백제는 가야, 왜와 연합하고, 가야 왜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 점령하나 고구려(광개토대왕)의 원군에 의해 격퇴되고 금관가야는 멸망한다.
고구려는 신라의 왕위계승문제까지 간섭하여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위에 올린다.
고구려로부터 벗어나려는 눌지왕은 433년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는다.
신라의 실직성에서 고구려장수가 살해되고, 경주에 주둔하던 고구려군 백여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된다.
이 즈음 백제는 중국 북위에 고구려를 공격하라는 국서를 보내는데,
강력한 고구려를 두려워한 북위는 이를 거절하고 국서는 고구려의 손에 들어간다.
이에 분노한 고구려(장수왕)는 한강을 건너 백제에 쳐들어가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유역을 차지한다.
이때부터 이름뿐이었던 나제동맹이 실질적인 군사동맹으로 발전되고 70여년간 팽팽한 대치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고구려의 최전방이 아차산이었는데, 551년 고구려의 내분을 틈탄 나제 연합군의 기습공격으로 무너지고, 한강유역을 상실한다.
신라의 한강유역에 대한 욕심으로 나제동맹은 깨지고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시작된다.
초반에는 백제군이 승리했으나 군사를 격려하려고 소수의 호위병만을 거느리고 이동하던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기습공격에 전사하며 전세는 반전되어 백제는 한강유역을 영원히 상실한다.
신라는 언제나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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