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4, 2008

大 고구려

이것이 고증된 고구려의 영역이다. 물론 모두 다 고구려의 영토는 아니다.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수륙양동작전으로 정복하고 백제왕의 항복을 받는다.
그러나 조공만 받고 영토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금관가야, 왜 연합군으로부터 신라를 구원하고 금관가야를 멸망시키고 그 영역을 신라에게 넘겨준다. 신라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다..

거란을 정복하고 거란을 배후로 후연을 정복한후 후연에 포로로 잡혀갔던 고구려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 괴뢰정부인 것이다

이것이 광계토대왕시대 고구려의 방식이었다. 중국이 그러했듯이 제후국들을 만드는것이다..



이것이 정복순서이다. 광계토대왕은 그냥 무작정 정복한것이 아니라 큰 비젼을 갖고 계획적인 정복사업을 벌였던것이다.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니었다. 이로서 동북아시아 최대의 시장을 확보하고 중계무역권을 장악한것이다. 심지어 고구려는 해군으로 서해를 가로막고 직접적인 무역을 가로막았다... 사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입, 멸망시킨 가장 큰 이유는 고조선의 우거왕이 길을 가로막고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었기때문이다.



고구려가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분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학자들은 해발 1700미터에 달하는 대흥안령산맥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대흥안령산맥의 정상이다. 실제로는 그냥 계속되는 평탄한 초원이어서 높기는 하지만 전혀 장벽이 되지못했다.



지두우를 정복함으로써 실크로드에 접근할수 있었다. 고구려 벽화에 서역인이 나오고, 서역벽화에 고구려사신이 나온다. 그리고 서역의 악기와 페르시아의 곡예가 고구려 벽화에 등장한다.



백제로부터 한강유역을 빼앗은 고구려왕은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다. 북위로 하여금 고구려의 배후를 치게 조정하다가 발각되어 장수왕의 보복을 받은것이다.

사실 고구려 전성기 영역은 고조선의 영토와 많이 일치하나,
이 모든 영역을 전부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것은 무리가 있다.
상당히 일시적인 지배였기때문이다.

요동지방은 고구려멸망이후 상실하나, 만주지방 발해가 계속 지배하고 연해주까지 넓힘으로써 사실상 점령한 영토개념으로 볼때 발해는 고구려보다 더 넒은 영역을 다스렸다고 한다.

만주지방인 중국 길림성은 조선족이 대다수를 이룬다.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고구려식 온돌, 창고들이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그것들과 같다는데 너무나 놀랐다.
고구려 멸망후 1300년동안 서민들의 생활은 변한게 별로 없는 느낌이다.

지금도 고구려 옛성주변에 사는 조선족들은 거기서 출토되는 고구려시대의 돌절구를 가져다가 사용한다고 한다. 집집마다 하나씩 있고, 다른 민족들은 돌절구를 안쓴다고 한다.

만주에 조선족이 많은것은
조선시대때부터 청나라가 자신의 발흥지인 만주지방을 비워두고 중국본토로 몰려갔던 탓도 있고
일제시대때 만주로 많이 건너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고구려식 생활방식이 유지된 이유는 정말 모르겠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백두산 정계비도 있고...
만주는 우리 영역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충분하다.

중국이 일본과 그런 조약을 맺은것도 이지역이 다분히 분쟁지역이었기때문이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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